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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치매는 노인이 가장 고통받는 퇴행성 질환이며, 두려워하는 병이다. 치매는 환자 본인에게만 고통을 주지 않는다. 환자 가족들도 덩달아 고통을 겪게 만드는 질환이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 자식도, 배우자도 못 알아본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을 남 대하듯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겠는가?
나이가 들면서 깜빡깜빡하는 일이 많아지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치매 초기 증상은 아닐까?" 하지만 모든 건망증이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망증과 치매는 기억력 저하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단순한 건망증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만, 치매는 점점 증상이 악화하며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특징이 있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2025년 기준 전국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100만 명이며, 유병률은 6.76%에 달한다. 노인 10명당 1명이 치매 환자다
치매는 개인과 가족에게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사회적·경제적 비용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3년 치매 관련 비용은 약 25조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치매 예방과 관리가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과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치매 환자와 가족을 국가가 책임지는 정책을 도입했다. 또한 전국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다. 그래서 치매 환자의 만족도와 삶의 질이 향상되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막 기반을 닦아가려던 치매 국가책임 확대 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와 만나면서 제동이 걸렸다. 치매 관리 체계 구축 관련 예산은 삭감됐고, 연구개발 예산 감축으로 치매 진단 기술 연구 등도 타격을 입었다. 이를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치매 예방과 관리 정책은 단순히 시설이나 프로그램 확충을 넘어 지역사회가 치매 문제를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치매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과제이며, 예방과 돌봄 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치매를 조기에 진단하고 적절한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책임을 한층 더 높여야 한다.
국가의 돌봄 관리 체계 바깥에 있는 치매 환자에 대한 돌봄은 오롯이 가족 몫이 된다. 몇 년 전 50대 남성이 80대 치매 아버지를 8년간 간병해오다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간병 살인’이 벌어졌다.
또한 지난해 4월 치매를 앓고 있던 70대 어머니를 살해한 50대 아들에게 어머니이자 고령에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를 살해한 범행이 반인륜적이고 결과가 중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하여 중형이 선고되었다. 결국 치매 부모는 불효자식을 만든 셈이다
치매 환자는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탓에 가족이나 다른 돌봄 인력의 보살핌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가족의 부담이 적잖다. 시설이나 병원에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 머무는 치매 환자 가족의 ‘돌봄 부담’이 너무나 심각하다.
가족은 신체적·정신적·경제적 변화를 포함한 삶의 부정적 변화를 경험한다. 특히 경제적 부담은 치매 환자 가족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돌봄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잖았기 때문에 치매 국가책임제가 필요한 것이다
전국 256곳의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가 있다. 치매의 조기 진단 부문에서는 이전보다 성과가 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치료와 돌봄서비스로 연계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하다. 또 치매 환자 가족들은 우선 경제적 부담을 줄여달라고 호소한다.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가 수두룩하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은 지속해서 강화되어야 한다.
집에서 간병하는데 한계를 느낀 가족들은 결국 시설로 눈을 돌린다. 노인복지시설 입소자 수가 2025년 8월 말 기준 37만5천여 명이다. 치매 환자 중에는 고령자가 많아서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은 대부분 40~50대다. 환자를 돌보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해 간병하는 식구도 질병을 얻어 환자로 전락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 식구들을 못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조차 못 알아보는 경우마저 생긴다. 거울에 비친 본인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오인해서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고 소리치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욕설한다고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치매는 소위 가족의 병으로 불린다. 치매 환자의 가족 돌봄 자들은 대부분은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는 24시간 돌봄은 경제활동을 제한받을 뿐 아니라 가족 간 갈등으로 가정이 파탄에 이르기 쉽다.
치매라는 용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절실하다. 치매는 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그 누구도 치매를 원해서 걸리는 사람은 없다. 사회에서도 치매 환자를 꺼린다.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노망났다’ 등 사회적 낙인과 혐오가 더해진 결과다. 치매는 용어부터가 부정적이다. 한자로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를 쓴다. 용어에서부터 환자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홍콩, 대만, 중국 등에서는 치매 관련 용어를 인지증(認知症), 뇌퇴화증(腦退化症), 실지증(失智症) 등으로 변경해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환자, 가족에 대한 모멸감을 없애 치매에 대한 적극적인 조기 진단과 치료를 한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용어를 변경해야 한다.
치매는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한 질환이다. 치매 검진이 곧 치매 관리의 시작이다. 치매가 의심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까운 보건소의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해 무료 검사를 받는 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남대 명예교수, 사회학 박사)
출처 : 시정일보(https://www.sijung.co.kr)